중국 선불교의 참패-티벳 쌈예사의 논쟁

우리는 흔히 불교면 다 거기서 거기인 줄로 알고 있으며 지극히 평화적인 종교라고 생각하지만 불교의 역사를 들여다보면 꼭 그렇지만도 않다. 물론 다른 종교에 비해 유혈충돌이 적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또 한편으론 교리적인 논쟁도 매우 치열했던 것이 사실이다. 대표적으로 소승불교도와 대승불교도 간의 대립은 굉장히 심했다고 기록되어 있으며 우리나라에서도 돈오돈수와 돈오점수간의 논쟁은 지금까지도 불교계에서 뜨거운 화두이다.

불교국가인 티벳에서도 불교교리에서의 충돌이 한번 있었다. 795년에 있었던 인도불교와 중국불교, 혹은 인도적 철학사유와 중국적 철학사유의 일대 충돌이라고도 불리어지는 쌈예사의 논쟁이 그것이다. 쌈예사는 티벳에서 처음으로 건립된 불교사원이라고 하는데 요즘 한국인들이 티벳을 여행할때 많이 방문하는 관광지이기도 하다.

티벳이 불교를 받아들인 이후 8세기 말에 티벳에선 인도불교의 전통과 중국불교의 전통이 충돌하고 있었는데 이때 티벳에서 중국 선불교는 마하연이라는 승려를 필두로 선불교 특유의 단박에 깨우쳐 부처되기(돈오돈수), 본연의 자성 등의 교리를 내세워 크게 교세를 확장하고 있었다. 이 교리에 많은 사람들이 매혹되었고 그 사람들 중엔 왕비까지 있어서 왕비의 후원을 받아가며 급격한 성장세를 계속하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 교리의 위험성(현재 중국 선불교의 전통을 잘 보존하고 있는 한국불교가 처한 것을 보면 선불교 교리의 위험성을 알 수 있다. 한국의 승려들이 선불교의 교리와 따로 떨어져 타락한 것이 아니라 원래 선불교 교리에 그럴 위험성이 존재하고 있다)을 직시한 티벳의 왕은 선불교의 활동을 금지시켰고 이에 많은 선불교 승려들이 자살과 자해까지 감행해가며 반발하게 된다. 이에 티벳에선 794년 인도의 학승 까말라쉴라를 초청하여 쌈예사에서 선불교 대표 마하연과의 논쟁을 주선한다. 이 논쟁에 입회한 티벳의 왕은 논쟁에서 지는 쪽은 티벳에서의 모든 포교를 중단하고 티벳을 떠나야 한다고 선언한다.

이 논쟁에서 선불교의 대표 마하연은 결국 까말라쉴라에게 모든 교설을 논파당하여 마지막에 가서 까말라쉴라의 어떤 질문에도 답변도 못한채 말문이 틀어막혀져 입을 다물어 버렸고 결국 꽃다발을 던져 패배를 인정했다고 한다. 그리고 마하연의 제자는 분을 참지 못해 자신의 성기를 짓이겨 자살했다는 말도 전해진다.(아무튼 종교적 광신도는 예나 지금이나 똑같은 듯)

이렇게 교리논쟁에서 참패한 마하연은 티벳을 떠나고 인도의 학승 까말라쉴라는 훗날 마하연이 보낸 자객에 의해 피살되었다고 티벳은 기록하고 있다. 아무튼 이렇게 중국불교와의 사상적 논쟁에서 승리한 이후 티벳에서 중국불교는 모습을 감추게되고 인도불교의 전통 속에서 독특한 불교사상을 정립하여 수준높은 티벳 고유의 문화를 이룩하게 된다.

이러한 티벳이 지금 또다시 중국에 의해 몸살을 앓고 있으며 천년 넘게 발전시키고 이어온 문화와 전통이 중국에 의해 말살될 위기에 처한 것은 정말 너무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아무튼 인류 역사에 전혀 도움 안되는 중국이다...

by 페이퍼 | 2008/03/16 11:43 | 불교에 관한 고찰 | 트랙백 | 덧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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