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글루 이사합니다.

http://kassapa.egloos.com/

일전에 말씀드렸다시피 이글루를 이사했습니다. 앞으로는 이곳으로 찾아주시길 바라겠습니다.

ps: 더불어 오늘부터 다시 이글루 엽니다. 앞으론 위의 주소에서 뵙겠습니다.

by 페이퍼 | 2009/09/30 21:19 | 공지사항 | 트랙백 | 덧글(9)

불교계의 환빠 권오민 교수, 정신 좀 차리소!

'하나만 진실'은 다양성시대에 역행

이미 지난번에 포스팅을 한 내용이라 더이상 언급하지 않으려 했다만(과거 포스팅은 여기 참조) 도대체 권오민 교수 요즘 왜 이러시나 모르겠다. 점점 갈수록 괴상한 주장만을 늘어놓고 계신다. 그 어거지의 정도는 가히 환단고기를 추종하는 환빠에 버금갈 정도니 내 보다보다 도저히 참을 수가 없어 한마디 해야겠다.

권오민 교수의 말을 들여다보자.

이제 이 논쟁을 마무리할 시점이 된 것 같다. 그동안 대다수의 독자들께서는 혼란스러웠을 것이다. “초기경전과 대승경전을 두고 서로가 불설이 아니라고 하니, 도대체 어쩌자는 말인가?” 구차스럽게 다시 변명하자면, 필자는 초기든 대승이든 혹은 위경이든 불설이 아니라고 말한 적이 없다. 다만 “초기경전은 친설이지만 후대 찬술인 대승경전은 그렇지 않기 때문에 비불설이다”고 한다면, 아함 또한 친설로 보기 어렵기 때문에 그렇게 말할 수 없으며, 그럼에도 그렇게 말한다면 아함 역시 비불설이라 해야 한다고 말하였을 뿐이다.


권오민 교수의 주장대로라면 삼국사기가 삼국시대의 사건들을 직접 보고 서술한 친술 사서가 아니니 삼국사기 역시 환단고기와 마찬가지로 역사적 사실과 관련이 없다라는 주장과 똑같을 뿐이다.

초기경전인 니까야와 아함경 역시도 그것이 정말로 붓다의 말인지 아닌지 우리는 확언할 수 없다. 마치 삼국사기에 기록된 역사적 사건들이 진실인지 아닌지 알 수 없는 것과 같다. 하지만 그렇다고해서 권오민 교수와 같은 방식의 극단적인 회의주의로 사물을 바라보면서 그 실체적 진실이 무엇인지 알 수 없고 너나 나나 피장파장 진흙탕에서 뒹구는 인생이니 서로서로 좋게 서로를 인정하고 넘어가자는 주장은 그야말로 웃기는 주장일 뿐이다.

권오민 교수의 논법대로라면 심지어 환단고기도 우리는 역사서로 인정해야 된다. 다시한번 권오민 교수의 논법을 들여다보고 삼국사기&환단고기와 비교해보자.

“초기경전은 친설이지만 후대 찬술인 대승경전은 그렇지 않기 때문에 비불설이다”고 한다면, 아함 또한 친설로 보기 어렵기 때문에 그렇게 말할 수 없으며, 그럼에도 그렇게 말한다면 아함 역시 비불설이라 해야 한다라는 논법은 그대로 삼국사기와 환단고기에도 적용될 수 있다. 자, 똑같은 방식을 삼국사기와 환단고기에 적용해보자.

삼국사기는 역사를 직접 보고 서술한 친술이지만 후대 위작인 환단고기는 그렇지 않기 때문에 비역사서라고 한다면, 삼국사기 또한 역사를 직접 보고 서술한 친술이라고 보기 어렵기 때문에 그렇게 말할 수 없으며, 그럼에도 그렇게 말한다면 삼국사기 역시 비역사서라고 해야 한다.

왜 권오민 교수의 논리전개가 황당무계하며 전혀 학자적 기본소양이 안갖춰진 논리인지 삼국사기와 환단고기를 대입해보면 금방 알 것이다. 

다시말하지만 니까야와 아함도 정말로 붓다의 친설이라고 볼 수는 없다. 아니 볼 수 없다기보단 확인하기 힘들다고 표현하는 것이 맞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후대에 찬술된 위작인 대승경전과 같은 성질의 것으로는 볼 수 없다. 삼국사기 역시 역사적 사실을 직접보고 쓴 친술이라고 볼 수 없고 삼국사기의 서술들이 진실인지 아닌지 100% 확언할 수 없지만 그렇다고 삼국사기가 후대에 찬술된 위작인 환단고기와 같은 것일 수는 없으며 환단고기를 역사서로 쳐줄 수 없는 것이다.

권오민 교수는 부디 학자적 기본 소양부터 제대로 갖춰주길 바란다.

그리고 한가지 더 지적하자면, 다양성의 시대에 '하나만 진실'은 시대에 역행한다고 하는데 어떤 '사실'에 대한 진실은 당위에 입각해 결론내릴 문제가 아니다. 남자와 여자는 키차이가 난다라는 '사실'에 대해 말하는 것을 가지고 그러한 사실을 말하는 것은 현대의 당위적 명제인 남녀차별 시대에 역행하니 틀렸다고 말하면 비웃음만 당한다. 마찬가지로 삼국사기와 환단고기 중 삼국사기만 인정한다는 '사실'의 영역에 다양성 시대에 역행한다라는 당위를 들먹이며 삼국사기와 환단고기 모두 역사서로 인정해야 한다고 하면 비웃음만 당한다.

마찬가지로 불교계의 환단고기인 대승경전들을 다양성시대라는 당위에 입각해 둘다 불설이라고 주장한다면 비웃음만 당한다.

by 페이퍼 | 2009/09/25 18:17 | 불교에 관한 고찰 | 트랙백 | 덧글(3)

음, 진화심리학적으로 초콜릿 복근은 되고 꿀벅지는 안되는 이유

뭐 요즘 꿀벅지로 이글루가 발칵 뒤집혀진 모양인데... 이젠 별걸 가지고 다 싸운다 싶지만 그래도 가만히 보니 몇몇 재밌는 이야기로까지 논의가 진행 중이라 한번 짚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남성이 여성에게 꿀벅지라고 표현하는 것은 폭력적이고, 여성이 남성에게 초콜릿 복근이라고 하는 것은 사회적 인식상 허용이 된다는 주장이 현재 나오고 있다.

혹자는 이것이 가부장 사회구조로 인해 발생된 것이라는 페미니스트들의 주장도 있는데... 정말 그럴까?

나는 이 부분은 진화심리학적으로 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왜 남자에게 초콜릿 복근이라고 하면 괜찮고, 여자에게 꿀벅지라고 하면 안될까?

답은 간단하다. 남자의 정자는 싸고 여자의 난자는 비싸다. 이게 답일 뿐이다. 무슨 가부장적 폭력 사회니 하는 페미니즘적 담론이 끼어들 여지는 별로 없다.

남자의 정자는 싸니 당연히 여러 암컷을 매혹시킬 수 있는 성적 표현은 오히려 남자에게 칭찬이 된다. 그래서 아내의 여성동료가 아내에게 "님남편 복근 완전 초콜릿이삼. 한번 만져보고 싶삼"이라고 하면 오히려 아내는 남편을 자랑스러워하며 어깨가 으쓱해질 것이다.

하지만 여자의 난자는 비싸니 당연히 감히 아무 수컷놈들이 난자를 노리는 것은 불쾌한 일이 되고 만다. "감히 네놈들처럼 싸구려 정자놈들이 이렇게 비싼 난자를 넘봐?"라는 심정이 드는 것이다. 넘보면 안되는데 넘보니 폭력적이라고 느끼고 모욕당했다고 느끼게 된다. 이건 마치 저 비렁뱅이 노숙자나 빈민굴에 사는 버러지 같은 놈들이 값비싼 금은보석으로 세공된 보석을 보고 군침을 흘리는 것을 보며 느끼는 귀족들의 불쾌감과 같은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밥도 못먹고 사는 버러지 같은 천민들이 감히 우리 귀족들의 귀한 보석들에 눈독을 들여? 저놈들 아주 호전적이고 폭력적이며 탐욕이 하늘을 찌르는 나쁜 놈들이군"이라는 심리와 아주 유사하다고 볼 수 있다.

이런 현상은 포르노 배우들에게서도 그대로 나타난다. 정자는 싸니 남성 포르노 배우의 몸값은 매우 싸다. 하지만 난자는 비싸다보니 여성 포르노 배우의 몸값은 남성 포르노 배우의 거의 10배 이상이 될 것이다. 최소 10배의 값인 비싼 난자(꿀벅지)를 남자의 정자(초콜릿 복근)와 똑같은 취급을 했으니 여성에게 폭력을 행사했다는 말이 나오는 것이다. 남자 포르노 배우와 여자 포르노 배우에게 똑같은 몸값을 지불하고 포르노를 찍으면 여성을 학대한다느니 폭력적이라느니 하는 말이 나오는 것과 똑같을 뿐이다...

심지어 포르노 배우 뿐만 아니라 일반 영화계에서도 그대로 나타난다. 여배우의 알몸연기, 배드신 연기는 항상 화젯거리이고 종종 그런 연기를 한 여배우를 피해자로 보기도 한다. 여배우 스스로가 아무리 나는 영화와 예술을 위해 내 몸을 다 불살랐다고 항변해도 그것이 잘 받아들여지지 않는 경우도 많다. 박쥐에서 송강호의 거시키가 노출된 것이 화제가 되긴 했지만 그렇다고 송강호를 피해자라고까지 보는 시선은 없다. 하지만 만약 김옥빈의 그곳이 활짝 노출되었다면 어떨까? 당연히 김옥빈은 순식간에 피해자로 전락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나는 꿀벅지란 표현을 써야 되느냐 말아야 되느냐에 대해선 별로 논하고 싶지가 않다. 물론 내 개인적으로는 좀 자주 써줬으면 하는 바람 정도는 있다...

하지만 어쨌거나 이런 논의에서 값싼 정자와 값비싼 난자 간의 경제적 상관관계가 작용되는 것을 관찰하는 것은 매우 즐거운 일이다.

ps: 반론댓글은 5일간만 허용합니다. 5일후엔 비공개로 돌립니다.

by 페이퍼 | 2009/09/24 03:48 | 남과 여, 그 미묘함에 대한 고찰 | 트랙백 | 핑백(3) | 덧글(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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