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09월 25일
불교계의 환빠 권오민 교수, 정신 좀 차리소!
'하나만 진실'은 다양성시대에 역행
이미 지난번에 포스팅을 한 내용이라 더이상 언급하지 않으려 했다만(과거 포스팅은 여기 참조) 도대체 권오민 교수 요즘 왜 이러시나 모르겠다. 점점 갈수록 괴상한 주장만을 늘어놓고 계신다. 그 어거지의 정도는 가히 환단고기를 추종하는 환빠에 버금갈 정도니 내 보다보다 도저히 참을 수가 없어 한마디 해야겠다.
권오민 교수의 말을 들여다보자.
권오민 교수의 주장대로라면 삼국사기가 삼국시대의 사건들을 직접 보고 서술한 친술 사서가 아니니 삼국사기 역시 환단고기와 마찬가지로 역사적 사실과 관련이 없다라는 주장과 똑같을 뿐이다.
초기경전인 니까야와 아함경 역시도 그것이 정말로 붓다의 말인지 아닌지 우리는 확언할 수 없다. 마치 삼국사기에 기록된 역사적 사건들이 진실인지 아닌지 알 수 없는 것과 같다. 하지만 그렇다고해서 권오민 교수와 같은 방식의 극단적인 회의주의로 사물을 바라보면서 그 실체적 진실이 무엇인지 알 수 없고 너나 나나 피장파장 진흙탕에서 뒹구는 인생이니 서로서로 좋게 서로를 인정하고 넘어가자는 주장은 그야말로 웃기는 주장일 뿐이다.
권오민 교수의 논법대로라면 심지어 환단고기도 우리는 역사서로 인정해야 된다. 다시한번 권오민 교수의 논법을 들여다보고 삼국사기&환단고기와 비교해보자.
“초기경전은 친설이지만 후대 찬술인 대승경전은 그렇지 않기 때문에 비불설이다”고 한다면, 아함 또한 친설로 보기 어렵기 때문에 그렇게 말할 수 없으며, 그럼에도 그렇게 말한다면 아함 역시 비불설이라 해야 한다라는 논법은 그대로 삼국사기와 환단고기에도 적용될 수 있다. 자, 똑같은 방식을 삼국사기와 환단고기에 적용해보자.
삼국사기는 역사를 직접 보고 서술한 친술이지만 후대 위작인 환단고기는 그렇지 않기 때문에 비역사서라고 한다면, 삼국사기 또한 역사를 직접 보고 서술한 친술이라고 보기 어렵기 때문에 그렇게 말할 수 없으며, 그럼에도 그렇게 말한다면 삼국사기 역시 비역사서라고 해야 한다.
왜 권오민 교수의 논리전개가 황당무계하며 전혀 학자적 기본소양이 안갖춰진 논리인지 삼국사기와 환단고기를 대입해보면 금방 알 것이다.
다시말하지만 니까야와 아함도 정말로 붓다의 친설이라고 볼 수는 없다. 아니 볼 수 없다기보단 확인하기 힘들다고 표현하는 것이 맞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후대에 찬술된 위작인 대승경전과 같은 성질의 것으로는 볼 수 없다. 삼국사기 역시 역사적 사실을 직접보고 쓴 친술이라고 볼 수 없고 삼국사기의 서술들이 진실인지 아닌지 100% 확언할 수 없지만 그렇다고 삼국사기가 후대에 찬술된 위작인 환단고기와 같은 것일 수는 없으며 환단고기를 역사서로 쳐줄 수 없는 것이다.
권오민 교수는 부디 학자적 기본 소양부터 제대로 갖춰주길 바란다.
그리고 한가지 더 지적하자면, 다양성의 시대에 '하나만 진실'은 시대에 역행한다고 하는데 어떤 '사실'에 대한 진실은 당위에 입각해 결론내릴 문제가 아니다. 남자와 여자는 키차이가 난다라는 '사실'에 대해 말하는 것을 가지고 그러한 사실을 말하는 것은 현대의 당위적 명제인 남녀차별 시대에 역행하니 틀렸다고 말하면 비웃음만 당한다. 마찬가지로 삼국사기와 환단고기 중 삼국사기만 인정한다는 '사실'의 영역에 다양성 시대에 역행한다라는 당위를 들먹이며 삼국사기와 환단고기 모두 역사서로 인정해야 한다고 하면 비웃음만 당한다.
마찬가지로 불교계의 환단고기인 대승경전들을 다양성시대라는 당위에 입각해 둘다 불설이라고 주장한다면 비웃음만 당한다.
이미 지난번에 포스팅을 한 내용이라 더이상 언급하지 않으려 했다만(과거 포스팅은 여기 참조) 도대체 권오민 교수 요즘 왜 이러시나 모르겠다. 점점 갈수록 괴상한 주장만을 늘어놓고 계신다. 그 어거지의 정도는 가히 환단고기를 추종하는 환빠에 버금갈 정도니 내 보다보다 도저히 참을 수가 없어 한마디 해야겠다.
권오민 교수의 말을 들여다보자.
이제 이 논쟁을 마무리할 시점이 된 것 같다. 그동안 대다수의 독자들께서는 혼란스러웠을 것이다. “초기경전과 대승경전을 두고 서로가 불설이 아니라고 하니, 도대체 어쩌자는 말인가?” 구차스럽게 다시 변명하자면, 필자는 초기든 대승이든 혹은 위경이든 불설이 아니라고 말한 적이 없다. 다만 “초기경전은 친설이지만 후대 찬술인 대승경전은 그렇지 않기 때문에 비불설이다”고 한다면, 아함 또한 친설로 보기 어렵기 때문에 그렇게 말할 수 없으며, 그럼에도 그렇게 말한다면 아함 역시 비불설이라 해야 한다고 말하였을 뿐이다.
권오민 교수의 주장대로라면 삼국사기가 삼국시대의 사건들을 직접 보고 서술한 친술 사서가 아니니 삼국사기 역시 환단고기와 마찬가지로 역사적 사실과 관련이 없다라는 주장과 똑같을 뿐이다.
초기경전인 니까야와 아함경 역시도 그것이 정말로 붓다의 말인지 아닌지 우리는 확언할 수 없다. 마치 삼국사기에 기록된 역사적 사건들이 진실인지 아닌지 알 수 없는 것과 같다. 하지만 그렇다고해서 권오민 교수와 같은 방식의 극단적인 회의주의로 사물을 바라보면서 그 실체적 진실이 무엇인지 알 수 없고 너나 나나 피장파장 진흙탕에서 뒹구는 인생이니 서로서로 좋게 서로를 인정하고 넘어가자는 주장은 그야말로 웃기는 주장일 뿐이다.
권오민 교수의 논법대로라면 심지어 환단고기도 우리는 역사서로 인정해야 된다. 다시한번 권오민 교수의 논법을 들여다보고 삼국사기&환단고기와 비교해보자.
“초기경전은 친설이지만 후대 찬술인 대승경전은 그렇지 않기 때문에 비불설이다”고 한다면, 아함 또한 친설로 보기 어렵기 때문에 그렇게 말할 수 없으며, 그럼에도 그렇게 말한다면 아함 역시 비불설이라 해야 한다라는 논법은 그대로 삼국사기와 환단고기에도 적용될 수 있다. 자, 똑같은 방식을 삼국사기와 환단고기에 적용해보자.
삼국사기는 역사를 직접 보고 서술한 친술이지만 후대 위작인 환단고기는 그렇지 않기 때문에 비역사서라고 한다면, 삼국사기 또한 역사를 직접 보고 서술한 친술이라고 보기 어렵기 때문에 그렇게 말할 수 없으며, 그럼에도 그렇게 말한다면 삼국사기 역시 비역사서라고 해야 한다.
왜 권오민 교수의 논리전개가 황당무계하며 전혀 학자적 기본소양이 안갖춰진 논리인지 삼국사기와 환단고기를 대입해보면 금방 알 것이다.
다시말하지만 니까야와 아함도 정말로 붓다의 친설이라고 볼 수는 없다. 아니 볼 수 없다기보단 확인하기 힘들다고 표현하는 것이 맞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후대에 찬술된 위작인 대승경전과 같은 성질의 것으로는 볼 수 없다. 삼국사기 역시 역사적 사실을 직접보고 쓴 친술이라고 볼 수 없고 삼국사기의 서술들이 진실인지 아닌지 100% 확언할 수 없지만 그렇다고 삼국사기가 후대에 찬술된 위작인 환단고기와 같은 것일 수는 없으며 환단고기를 역사서로 쳐줄 수 없는 것이다.
권오민 교수는 부디 학자적 기본 소양부터 제대로 갖춰주길 바란다.
그리고 한가지 더 지적하자면, 다양성의 시대에 '하나만 진실'은 시대에 역행한다고 하는데 어떤 '사실'에 대한 진실은 당위에 입각해 결론내릴 문제가 아니다. 남자와 여자는 키차이가 난다라는 '사실'에 대해 말하는 것을 가지고 그러한 사실을 말하는 것은 현대의 당위적 명제인 남녀차별 시대에 역행하니 틀렸다고 말하면 비웃음만 당한다. 마찬가지로 삼국사기와 환단고기 중 삼국사기만 인정한다는 '사실'의 영역에 다양성 시대에 역행한다라는 당위를 들먹이며 삼국사기와 환단고기 모두 역사서로 인정해야 한다고 하면 비웃음만 당한다.
마찬가지로 불교계의 환단고기인 대승경전들을 다양성시대라는 당위에 입각해 둘다 불설이라고 주장한다면 비웃음만 당한다.
# by | 2009/09/25 18:17 | 불교에 관한 고찰 | 트랙백 | 덧글(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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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승경전은 '후대에 이렇게 생각한 사람들도 있었다' 하는 데에 의의가 있겠지요라는 님의 말에 100% 동감합니다. 그런 이유로 저는 한국불교에서 신주단지 모시듯 모셔지는 화엄경이라든지 법화경을 경(經)이 아니라 론(論)으로 바꿔야 한다고 봅니다.
경율론 삼장 중 경(經)은 붓다의 설법을 모아놓은 경전이니 아함경은 경(經)이 맞으므로 그대로 아함경(經)으로 부르되 후세 창작이 분명한 대승경전들, 특히 화엄경, 법화경 등은 분명한 후세창작인만큼 경을 해석, 주석한 론(論)에 포함시켜 화엄론, 법화론 등으로 아예 책이름까지 바꿔야 한다고 봅니다.